아랫마을 이야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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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9,431회 작성일 21-01-10 16:19본문
아랫마을 이야기.
-23-
은목서 향기는 간헐적으로 은희의 코를 맴돌고 자극했다. 은희는 눈을 감았다. 코로 향기의 근원지를 알아낼 요량이었다. 은희의 오뚝한 코에 자리 잡은 콧구멍은 향기가 나는 방향으로 은희를 안내해 줄 것이었다.
갑자기 언니와 대화 한지도 오래된 것이 생각났다. 언니는 은희의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았다. 은목서 한 구루를 언니에게 선물하면 그녀는 기뻐할 것이었다. 언니에게 간 나무들은 망가지거나 자주 시들어 죽었다.
언니는 타인의 소유물에게는 욕심을 냈으나 그 욕망의 대상이 자신의 소유로 바뀌었을 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니가 관심을 두건 말건 나무는 자신의 향기를 언니에게 흩뿌릴 것 이었다.
향기을 쫒던 은희 에게 어느 순간 자동차의 급 브래이크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로 인해 고무 타는 냄새가 일순간 은목서 향을 덮었다. 눈을 감고 걷는 은희와 간발의 차이로 소형트럭이 막아섰다. 어쩌면 트럭의 앞머리가 그녀의 스커트자락을 스치고 멈춘 듯 했다. 자그맣고 하얀 소형트럭은 낡았으나 다부지게 브래이크를 작동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뛰어 내리는 운전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은이 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목을 길게 빼고 은희의 얼굴을, 그리고 눈을 살폈다. 은희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뜬눈으로 그를 보았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얼굴을 박고 열심히 국물을 들이키던 사내였다. 은희는 그 사내와 자신의 시간과의 간섭이 일어나는 것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회색빛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쓰러지려는 은희를 부축한 사내는 은희를 조심스레 자신의 소형트럭에 태웠다. 사내는 운전하면서 열심히 도로변의 병원간판을 찾았다.
점심도 거를 뻔 했는데 이번에는 보험 사기범을 만나게 되었으니 오늘은 필시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멀쩡하게 젊은 여자가 소경행세를 하며 차와 접촉사고를 시도하려고 차도로 걸어 들어온 것부터가 수상했다.
도대체 그토록 많던 병원간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들은 주로 빌딩 위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연신 윈도우 위쪽에 눈길을 주며 핸들을 비틀고 있었다. 윈도우와 전정사이에 혓바닥처럼 벌린 자동차의 시렁위에 끼워져 있는 차량등록증의 차주 란에는 김 경수라고 찍혀있었다.
페이브먼트를 빠져나갈 때 뒤따라오던 택시가 앞지르기를 하면서 욕지거리를 토하고 경적을 울리고 지나갔다.
은희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은희가 말했다.
“차 좀 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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