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기행/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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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191회 작성일 18-05-30 22:21본문
세부 기행/박원철
어릴 때 사내놈이 눈물을 잘 흘린다고
지 어미를 닮아 그렇다며 할아버지한테 꾸중을 많이 들었다.
신혼 초에도 슬픈 연속극보다 눈물 훔치는 걸 보고 중매로 만난 새색시가 깜짝 놀라며 “남자가 이렇게 맘 약해서 앞으로 애 키우며 어찌 살겠소”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번 설 연휴 망망대해 끝없이 빤작이는 별들을 보며 혼자 세부행 밤 비행기를 탔다.
첫날 오전 10쯤 가이드가 데려간 곳이 막탄이라는 마을이었다.
내리자마자 7~10살 어린놈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울긋불긋한 목걸이를 팔았다.
가이드에게 이 시간 “저 애들은 학교도 안 가냐고” 하니
오전반 오후반으로 학교에 가지만 그중에 부모가 없는 애들이 있어 저렇게
장사를 해 생활한다고 했다.
살며시 코코넛 파는 아줌마한테 저 중에 어느 애가 부모가 없냐고 물어보니
제일 작은 애 쪽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피가 엉겨 붙은 맨발, 어떻게 이 물건을 팔아야 많이 팔까, 왜 팔아야 하는지,
그 애가 외치는 원달러, 원달러 소리는 하늘로 헤매기만 한다.
점심 먹을 때 하얀 쌀밥이 출렁이는 물속 물고기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그 목걸이를 몽땅 팔아 줄걸, 사진이라도 찍어올걸,
순간이나마 그런 모습 사진 찍을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둘째 날
이렇게 멀리 왔는데 오늘은 즐겁게 보내야겠다.
근심. 걱정 저 바닷물에 다 빠트리고 에메랄드빛 고운 바닷물 한 아름 안고 가야지,
다정한 연인들을 시샘하면서 혼자 멋쩍어서 앞.뒤 돌아봐도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배경 사진만 찍고 찍었다.
점심 먹고 앙증맞은 유람선을 타고 섬 일주를 했다.
배 안에서 한 명은 기타를 치고 한 명은 의자를 두드리며 한 여자가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육지가 보일 때쯤, 그 여자가 파도를 잠재우려는 자장가처럼 잔잔하게 Amazing Grace 불렸다. 몇 소절 지나니 옆에 아줌마가 눈물 훔친다.
난 오늘은 절대 슬픈 생각 안 해야지, 저 멀리 지평선을 쳐다보며 외면한다.
그러나 흐느적거리는 음률 속에 묻어나오는 첫사랑 같은 가사는 떨쳐버릴 수 가없다.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갑자기 저 멀리 지평선이, 움직이는 하얀 배가 흐릿하게 보인다.
아직 끝내지 못한 방학, 목사님 중매로 결혼해 30년 신앙생활 잘 하다
세상에 찢기고 상처 난 마른 가슴에 가득히 고여 오는 회한의 눈물이었다.
셋째 날
그동안 먹지 못한 한식을 먹기 위해 돼지삼겹살 집으로 갔다.
그곳 역시 입구에 아이 몇이 코코넛 통, 목걸이를 팔고 있었다.
두 명은 악착같이 달라붙는데 7살쯤 된 아이는 웅크리고 앉아있다.
“왜 재는 물건도 안 팔고 앉아 있니?” 그중 큰애 말이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한다. 어떻게 아프냐고 하니, 배가 고프다 하더니 지금은 아프다 한다고,
대답해주는 애가 자기 언니 친구의 동생이며 엄마 아빠가 없다고 한다.
지폐를 한 장 주니 받을 생각도 않고 손에 끼워 준 그대로
주머니에 넣을 생각도 않는다. 팔아야 할 목걸이는 바닥에 밀쳐놓고 말이 없다.
검은 얼굴에 하얀 눈동자가 유달리 커 보인다.
가이드가 의아하게 채근을 하지만,
그날도 구워 놓은 삼겹살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4시간 비행기를 타고가
한 아름 담았던 에메랄드빛 고운 바닷물을 줄줄 흘려버린 설날,
필린핀여행 비망록 3박 4일을 그렇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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