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10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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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24,937회 작성일 19-05-26 22:59본문
서거 10주기(2)
2002년 12월 19일 오후 4시
“여기 노무현 후보 누님 계십니까?” 기자가 마을회관을 찾아왔다.
“여사님 당선이 확실합니다. 상 차리십시오.”
노무현 후보 누님은 형제들이 모두 서울로 떠난 텅 빈 집 남아
택시를 타고 진영 읍내서 배, 명태, 정종을 한 병사와
동생네 집(노건평) 마당에 상을 차려놓고 혼자 신령님께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부디 무현이가 남북통일 시키고 지역감정 없도록
정치 잘하게 신령님이 돌봐 주이소.
업어서 키운 후 부산상고 다닐 때 세탁일 하며 공부시킬 때
뒤에서 어깨을 살며시 안고 “누부야 조금만 참아라, 내 졸업해서 돈벌이가 누부야 갔다줄게” 하던 말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서거 후 노건평 씨가 아픈 기억을 지우야 겠다며 집을 헐고 신축을해
이제 그때 집도 마당도 없어졌다.
마을 입구 노건평 씨 창고를 개조해 사용하던 노사모 사무실도
더는 조문객이 눈물로 쓴 노란 딱지도 볼 수가 없고 (달셋방)처럼
(수리 중)이란 글씨 하나 달랑 붙여 놓고 문을 닫았다.
누가 창고를 사무실로 쓴다고 시청에 고발을 했다.
작년에 봉하마을 리장은 읍내농협 조합장에 당선되고
오리 쌀농사 짓는다고 장화 신고 다니던 김정호는
국회의원이 되고, 김경수는 도지사가 되었다.
포장마차로 돈 번 옥희 엄마는
포장마차 앞에서 종이컵 둘둘 말아
빗자루 몽둥이로 골프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이혼을 했다고 한다.
“니들이 믄데 내가 누군 줄 아냐?” 술만 먹으며 온 동네를 헤매는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그 사람은 용인서 자봉온 어느 여자를 추근대다 들통나 결국 봉하마을에서 쫓겨갔다.
한때 봉하마을서 김정호와 함께 농사일하며 자봉하던
노사모 회원 상길이가 이제 김정호한테 조폭처럼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쳐다보던 천둥소리(닉:노사모)
“야, 상길이 니는 그렇게 따라다니더니 아직 한자리 못 얻었나?
들풀(닉)은 청와댄가 어데 갔다 카고, 또 누구는 어데 들어갔다 카던데...
”아이구 형님 지는 뭐 그런 것 바라고 봉하옵니꺼?“
“ 그래, 상길이 니 만큼은 진국인 줄 안다.”
봉하 막걸릿병 허옇게 몇 개 드러누우니
서거 때 흰고무신(닉) 사무실서 밤새우며 쥐박이 죽일 놈,
분명히 타살이다, 내가 뉴스보고 진주서 즉시 달려와 부엉이바위 가보니 피 한방울 없었던 기라“ 천둥소리가 또 거품을 문다. 강돌이가 말을 가로 막는댜, “고마 마시고 부시나 보려가자 이제 도착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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