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이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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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9,050회 작성일 21-01-07 08:56본문
아랫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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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꿈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 꿈의 주인공이 되어가길 바라고 급기야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선량한 시민들. 자신의 꿈에 의해 만든 덫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타인에게 속상해하는 사람들. 그러나 팍팍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착한 사람들. 아스팔트 위를 걷는 다양한 도시의 유목민은 타인의 꿈에 유혹되어 저마다 분주했다.
키 크고 잘 생긴 남자와 함께 창가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꿈은 허망했다. 무언가를 담아야 제 역할을 하는 기능만을 갖춘 명품 백을 아무리 흔들고 걸어도 허전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듯 같았다. 일정한 패턴을 가진 형태로 사람들은 행진 했고 살아내고 있었다.
손에 든 알 수 없는 금속의 폴더를 향해 속삭이기도 하고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힌 이를 드러내며 웃고, 더러는 소리 높여 군시렁 거리고 있었다.
은희는 이 도시를 걸어서 횡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로수가 서있는 페이브먼트를 굳세게 행진하는 것이 좋을 가. 처마도 없는 건물과 먼지 낀 박공아래의 불럭을 헤아리며 하염없이 애비뉴를 걸을 가.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헛헛함과 다투는 것이 수월한 일 일가. 타협을 요구하는 내면의 또 하나의 은희는 떠밀리기 전에 이외의 제안을 했다. 대낮의 혼술 이었다. 거리의 모서리마다 편의점이 있었다. 은희는 파라솔을 앞세우고 있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한 캔의 맥주를 집어 들었다. 파라솔 아래는 번잡 했다. 손 전화를 열심히 드려다 보는 알바생은 안쓰러워 보였다. 한 남자는 컵라면을 앞에 놓고 나무젓가락을 찢고 있었다. 한 끼의 식사를 컵라면으로 해결해야하는 그 남자의 오후의 시간은 다급해 보였다. 은희는 벽에 걸린 아몬드 봉다리를 한 개 뜯어내고 맥주 캔의 꼭지를 떼어 냈다. 캔을 입에 대고 액채를 빨아드리는데 컵라면을 먹던 사내가 돌아보았다. 남자는 은희에게 무심한 일별을 두고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컵라면에 얼굴을 박았다. 선량한 눈을 가진 그는 단순하고 고집이 센 사람 같았다. 라면국물을 넘기는 남자의 목울대를 보면서 은희는 남자의 시간이 궁금했다. 그 남자는 그물처럼 조밀하게 직조된 타인의 꿈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일가.
은희는 캔을 한 개 더 집으려다가 눈을 질끈 감고 편의점을 나섰다. 쌈지공원을 지날 때 은목서 향이 어디선가 흘러와 코에 맴돌았다. 향은 옛날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언니인 금희가 좋아하던 향이었다. 욕심 많은 그녀는 굳이 나무를 뽑아다가 자신의 방 근처에 옮겨 심었다. 그러나 향기는 골고루 집안 전체에 감돌았다.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꽃집이 있을 터였다. 근래에 언니를 본지가 오래 된 것 같았다. 향기를 언니 금희 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향기의 근원지를 눈 대신 코로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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