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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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10,191회 작성일 20-12-24 23:3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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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농사 일이 바빠서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그녀는 손톱 소제나 하고 소제한 손톱을 입김으로 확 불면서 이따금씩 그녀의 아빠인 퇴임이장에게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번짓 수가 이상한 요구를 했다. 그녀의 요구는 마을길을 넓히자는 거였다.
일생동안 딸들의 요구에 맞서 이겨본 일이 없는 이장은 딸의 황당한 제의를 듣고 골막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 마을의 도로가 축제의 장소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맞춤한 조건을 그녀는 착안했고 그녀와 친구들은 마을 축제를 구상하여 기회를 엿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장의 차녀인 은희의 이번 제안에는 이장도 싫지 않은 제안이었다.
이장의 생각은 마을 앞길을 넓히자면 공사를 구실로 한바탕 폼을 잡고 마을에 날파람을 일으켜야 될 일이였다. 그는 마을을 휘저을 기회가 온다면 오랜만에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장은 완장차고 한참 신나게 일을 하던 과거의 옛 동료들을 움직여 마을회의를 시작하고 관계기관에 승낙을 얻어냈다. 마을 입구에 볼품없었던 자드락길을 넓히고 환삼덩굴을 걷어내는 마을사람들을 다독이는 이장은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난장판을 벌리고 있는 길 가의 들꽃과 잡초들을 걷어낼 즈음 이장 집 은희는 다시 한 번 부친의 염장을 지르며 들풀의 제거 작업을 중단시켰다. 우거진 들풀더미와 함께 꽃무릇 송이들은 폐병환자가 쏟아놓은 각혈처럼 음산하고 처절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꽃들의 요상한 술렁임을 이장 딸 은이는 감지했는지 몰랐다. 공사 현장에서 점심을 먹고 이를 쑤시던 마을 사람들은 이장부녀의 다툼을 짓궂게 즐기면서 수돗물을 먹고 지낸 딸년의 궁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이장에게 좋은 말로 거들었다.
내연남과 내연녀, 결혼을 빙자하고 만나는 남녀들. 연인들의 친구들, 젊은이, 늙은이들에게 마을은 차츰 알려지고 사람들이 모이더니 급기야 번다해졌다.
어항 속에 갇혀있던 성긴 물고기들과 잔챙이들이 통로가 터진 그물에서 탈출하듯 갑갑하던 일상에서 탈출한 나들이꾼들은 입소문을 흘리며 스스로 자드락길을 찾아와서 북적였다.
래방객에 의해 고무된 마을사람들은 방문객에게 선보일 볼거리가 빈약한 것이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방문객이야 슬며시 방문하여 좋은 풍경에 자신들의 모습을 담아서 손 전화로 사진 한 장을 동료에게 날리면 그뿐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지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제는 비즈니스의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비즈니스는 수입을 창출해야 했다. 수익을 내기위해서는 이밴트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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