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이야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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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8,912회 작성일 21-01-14 18:22본문
아랫마을 이야기
-25-
홀로 사는 큰딸 금희와 작은딸 은희는 모처럼 아버지의 자택에 모여 저녁을 하게 되었으므로 퇴임이장 최병무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휘저으며 사는 금희는 타인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았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데 인색한 그녀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항상 당황하고 결국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최병무 이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두 딸의 관계만은 돈독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아비를 중심으로 두 딸은 저녁을 겨냥하여 뭉치자는 거였다. 최병무 이장은 두 딸을 위하여 고기를 끊어 왔다. 읍내의 키 작고 볼품없는 그의 단골의사는 되바라지게도 죽고 싶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그에게 협박 같은 충고를 했다. 가족만 화목하다면 의사의 협박 따위는 그의 귓등을 스치는 미풍으로 느껴졌다.
마당의 조명은 은은하게 밝혔고 풀 향기는 그윽했다. 은희는 금희에게 선물하기 위해 은목서를 준비했다. 금희는 자신이 빚은 포도주를 가져왔다. 가족만의 팜파티에 강원도에서 흘러들어온 은희의 친구가 신경 쓰였다. 경희라고 불리는 작은딸의 친구는 예의도 바르고 둘의 사이는 아삼육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가족처럼 팜파티를 거들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에 깜빡이는 LED등을 설치한 것은 경희의 아이디어였다. 가족들의 찬치 치고는 지나친 호사였다.
금희의 등장을 모두 환영하며 은희는 과장되게 언니를 포옹 했다. 포옹의 몸짓은 전염되어 금희는 아빠와도 정다운 포옹을 했다. 최병무는 기분이 고조되었다. 그는 소박한 아빠였다. 가족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했고 더욱이 술과 고기가 있었다. 그는 행복에 겨워 이미 마음은 들썩이고 있었다.
큰딸 금희는 경희를 눈짓하며 은희에게 물었다.
누구
내친구
윤경희예요.
말랐네.
경희의 날씬함을 금희는 말랐다고 무례하게 표현했다. 은연중에 자신이 은희의 언니임을 드러내는 말투였다. 금희가 도착하기 전에 인스턴트 숯을 갈았으므로 괄한 숯불 위에 바비큐 꼬챙이는 이내 올려졌다. 잉걸불 위에서 몸을 뒤채이면서 익어가는 바비큐 꼬챙이를 바라보던 금희는 경희에게 불쑥 프라이팬을 가져오라고 했다. 금희는 화덕 앞에 둘러앉은 가족 중 서열이 가장 낮아 보이는 경희를 지목해서 심부름을 시킨 것이나, 그렇더라도 동생인 은희의 손님에게 초면으로 대하는 태도로서는 무례하고 도가 넘는 처사였다. 경희는 날렵하게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후 프라이팬을 가져온 경희에게 ‘기름도 가져와야지’ 하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름병을 내밀었다. 경희는 슬기롭고 사려 깊은 심부름꾼이었다. 은희와 경희의 우정은 허물없는 사이였으나 이장 최 병무는 작은딸의 친구가 대처하는 방법이 예뻐 보여 자신도 모르게 안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큰딸의 거침없음은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했으나 경희는 어느새 가족처럼 응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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