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이야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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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9,877회 작성일 21-01-03 01:0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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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이장의 차녀인 은희의 고집은 가족 중에 제일 질겼다. 이장은 그녀를 멀리 강원도로 시집보내고 내둥 아쉬워했었다. 은희가 막내아이 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항상 살가운 자식이었다. 물론 장녀인 금희도 금쪽 처럼 귀하긴 했다. 귀하게 기른 큰 년은 짝을 잃고 집으로 들어왔고 차녀인 은희는 짝을 차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 딸과 같은 지붕을 이고 사는 이장은 내심으로는 마음이 흡족했으나 겉으로는 항상 두 딸에게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차녀인 은희는 허영 끼가 많았다. 음악에 관한 그녀의 공감력은 뛰어났다.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 때문에 사람들의 맛과 멋을 알아차리는데 탁월했다. 당연히 친구도 많았다. 고집 센 그녀였으나 자신의 감정은 여렸다.
송씨라는 젊은 농사꾼에게 업혀서 대문 안으로 들어선 방문자를 보자 은희는 단박에 얹혀 들어오는 그녀를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방문자를 업고 온 송씨는 민망스럽도록 마당 안으로 들어와 방문자를 툇마루에 앉혔다. 평소 다정한 성격의 은희는 그러나 감정을 숨기고 송씨의 등에 업힌 그녀를 내치는 듯 보였다. 미안한 표정의 방문자는 은희의 우정을 겨냥하고 먼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연유일가. 은희가 그녀에게 먼저 물었다.
“네가 왜 여기에 오냐”
“은희야 네 말이 맞았어.
“이런 바보 같은 것”
“그런 말하지 마, 할 만큼 했어”
매캐한 침묵에 송씨는 이 여인을 다시업고 돌아서야 할지 몰랐다. 은희와 경희는 함께 마당 한 가운데의 오래된 화분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두 여인은 이야기의 매듭은 누가먼저 끌러 놓아야할지 밀당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래된 화분을 둘러싸고 있는 이끼는 초록색 빌로드 처럼 천연했다. 야릇한 국면에도 송씨는 여인을 다시 들쳐 업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송씨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나야말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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