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 마을의 네 사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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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10,871회 작성일 21-01-20 09:37본문
1. 새댁의 고백
김해의 평야는 마을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주었다.
그러나 산허리에 궁색하게 자리 잡은 찬 새미 마을 사람들은 풍요로움은 커녕 옹색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샘물 하나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샘터는 찬 새미 혹은 찬 샘으로 불리웠다.
넓은 들에서 수확한 추수로 아랫마을 사람들은 살림이 탁탁했지만 찬 새미 마을에서는 샘터의 물이 재산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찬 샘에 대한 위세가 등등할 수밖에 없었다.
이웃부락 사람들에게, 물을 길러오려거든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오라는 둥, 품행방정한 사람만 오라는 둥, 찬 샘 마을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손님에게 불편한 텃세를 주문했다. 그러나 살림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인근마을에서는 모든 주문을 감내해야 했다.
찬 샘이 위치해 있는 산 중턱 까지 와서 샘물을 길어가려면 여자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간혹 아랫마을 남자들이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러 올라올 경우가 있었다. 빨래하던 아낙들은 가당치도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이구동성으로 지청구를 놓는다. 물을 길러오는 남자들은 집안에서 물과 마주하는 여자 몫의 고난을 대신하여 수고하러오는 사내들이었다. 샘터의 여자들은 자상한 남자를 가진 이름 모른 행복한 여자에게 대한 시새움 때문에 더욱 핀잔을 주는 것 인지 몰랐다. 천혜의 샘터 근처에서 궁싯거리는 사람들의 어떠한 주장도 통하지 않았다. 찬 새미 마을 샘터가 금남의 영역임은 암암리에 정해진 관습이다.
샘터에는 항상 아낙들이 모였다. 그녀들은 모여서 수다 떠는 것도 즐거웠고 빨래 방방이로 빨래를 흠씬 두들겨 패는 것도 즐거웠다. 자신에게 근심을 안긴 하루의 갖가지 일상의 감정의 정화를 위해 기 를 쓰고 함께 빨래를 두들겨 패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죽 끓듯 하는 변덕은 자신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다.
빨래터에서 그녀의 모습은 명랑해 보였다. 이윽고 손이 빠른 젊은 것들은 일찌감치 빨래를 끝내고 한둘씩 자리를 떠난다. 새들도 떠났다. 어머니는 외로워지기 시작한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화풀이를 시작 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해지고 때로는 격하게 울기도하고 급기야 나를 향해 방망이를 들고 매질을 해온다.
시어머니의 매질은 참을 수 있다. 다만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는 어머니의 슬픔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맞는 일에 익숙해져있다. 맞는 나의 아픔과 매질하는 어머니의 아픔이 같은 질감으로 전해온다. 어머니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매질한다.
당신의 슬픔을 며느리에게 풀어내려고 방망이를 바투 잡았으리라. 그것은 매질이 아니었다. 당신의 슬픔을 털어내는 동작이었다. 아들을 놓치지 않게 움켜쥐었어야하는 것은 며느리 몫이었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회한이었다.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져간 아들을 움켜잡았어야 했다는 자신의 회한을 며느리에게 풀어내는 것이다. 어머니의 매질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안타까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마을사람들의 품성은 다정했지만 단순 했다. 다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가 얇았다.
그들의 귀로 흘러들어온 소문은 즉시 다른 사람의 귀에 흘려 넣었다. 마을의 남자들은 피신하던지 숨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아들을 멀리 소개시키라고 매일 성화였다.
이른 아침 낮선 사람들은 안개와 함께 마을에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을을 떠나면서 남자들은 포박해 데리고 갔다. 기품 있는 사내와 재능 있는 남자들은 소리 없이 끌려갔다. 고집스러운 그 이도 어머니와 아내를 뒤에 두고 묶인 손을 깍지 끼고 담담히 끌려갔다.
2. 시누이의 일기
오빠와 함께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 봉두난발을 하고 그는 돌아왔다. 그는 거지행색으로 한동안 혼이 나간 듯 마을을 배회했었다. 그의 넓은 어깨는 구리 빛이며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무거운 물지게를 지고 오솔길을 누비며 물을 길어 나르는 솜씨는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았다.
물지게를 지고 겅둥겅둥 뛰어서 모퉁이를 돌 때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탁 치고 돌아서는 솜씨는 우스꽝스러웠다. 그의 궁둥이를 치는 모습을 보는 마을 여인들은 매번 자지러졌다. 그와 비교할 만한 광대는 없었다.
마을에서 나오는 찬 샘물은 인근에서 모두 탐내는 마을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다. 간혹 물이 부족한 이웃마을에서 물을 탐내고 물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남자라도 있으면 샘가에 있던 여인들은 물을 길러온 사내에게 새때처럼 입을 모아서 핀잔을 주었다. 처음 물을 구하러 나타난 그에게 핀잔을 주려고 입술을 오므리는 여인들에게 나는 말했다.
‘마을에 변변한 사내가 없는데 사내구경 좀 하게 놔둬’
그는 아랫마을에서 살았다. 오빠의 친구인 그는 나와 올캐 언니와도 낮이 익었다. 마을의 젊은이들과 함께 끌려간 그는 혼자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우리에게 항상 미안 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언니에게 미안해하는 옆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찬 샘물을 마신 후의 느낌처럼 선연했다. 나는 그를 싫어하기로 헸다.
3. 그 남자의 고백:
샘터는 여인들의 차지였다.
처음으로 찬 샘 마을사람들의 거부감을 헤치고 샘가에 돌입했을 때 나를 향한 아낙들의 반응에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듯한 사람들이었다. 세파에 흔들리는 배의 한 켠 에는 사내라는 동물도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을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찬 샘의 물을 길어가며 그녀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에 나는 그녀들의 경계심을 풀어 놓아야했다. 나는 물 지개의 무게가 실린 보폭을 짐짓 헝클어 트리고 궁둥이를 탁 치며 넘어질듯 여인들에게 짐짓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녀들에게 동정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몸짓이었다.
아무도 없는 한 낮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샘터에서 빨래를 하고 모두 귀가한 때를 겨냥하여 샘터에 스며들어 두레박을 담글 작정이었다.
오솔길이 끝날 참에 말발도리 군락 너머로 그녀들이 보였다. 나는 이외의 장면을 목도했다. 매질하는 시어머니와 맞는 며느리의 광경이 나뭇잎사이로 보였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매질을 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며느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가. 어머니는 무슨 넉두리를 하며 매질을 할 가. 장면이 이례적이었으나 멀리서 보이는 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은 그러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때리고 맞는 그녀들의 의식은 지루했다. 내가 시선을 거두려는 그 순간 빨래방망이를 든 어머니는 몸의 중심을 잃고 바위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참이었다.
순간 어머니의 적삼자락에는 나뭇가지가 걸려 있었다. 다행이었다. 며느리가 어머니를 포옹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어머니가 움켜쥐고 있는 방망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적삼 자락을 위태롭게 꾀고 있던 나무 가지를 힘껏 가격했다. 가지가 부러져야 균형을 잃은 어머니 몸을 나무 가지에서 빼내어서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우러진 어머니의 몸무게를 그녀가 감내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가지는 부러지지 않고 며느리는 재차 나뭇가지를 가격했다. 무성한 나뭇가지도 한사코 어머니를 놓아 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수채화를 바라만 볼 수 없었다. 나는 위험을 느끼고 뛰어나가 어머니를 부축하여 힘껏 당겼다. 한데 엉켜있던 며느리도 함께 딸려왔다.
완강한 힘에 의해 나무 가지는 부러지면서 비로서 어머니를 놓아주었다. 나는 며느리와 어머니를 함께 끌어안고 뒤로 고꾸라졌다. 쏟아지는 두 여인의 무게의 충격을 가슴과 엉덩이로 막아주었으나 나는 엉덩이뼈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4. 마을사람들의 생각 :
찬 새미의 샘터에서 사단이 난 소식을 듣고 시누이는 숨을 헐떡이며 현장에 도착했다.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은 당혹스러웠다. 어머니는 바위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다칠 뻔 한 자신과 며느리를 한꺼번에 구한 자가 낮 익은 아들 친구라는 것을 함께 깨달은 것은 자신의 딸이 도착하기 전일 것이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넘어진 현장에서 올케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빨래방망이가 꼭 쥐어져 있었다. 언니는 아픈 나머지 도착한 시누이가 골막한 생각을 하느라고 도끼눈을 뜨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어머니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시누이는 어머니의 몸을 헤처 보았다. 어머니는 다시 기절한 척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는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세 여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가장 황당한 것은 남자의 입장이었다. 그는 허리를 다쳐 아픈 듯 움직이기 어려워 보였다. 물지게를 지고 궁둥이를 치며 찬 새미 터의 모퉁이를 돌아 서 달리던 광대는 난처한 국면으로 끼어든 자신의 행동이 설명하기 난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을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사람들은 오랜 동안 매질 당한 며느리의 반란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오랜 매질을 감내하고 위험으로부터 시어머니를 감싸 안은 며느리가 고마울 뿐이었다.
어머니의 친구인 늙은 마나님은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았다.
‘아들은 놓쳤지만 며느리는 꽉 잡아야 혀!’
-2021년 1월 다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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