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이야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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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12,821회 작성일 21-02-25 21:26본문
아랫마을 사람들 -37-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으나 공사를 위한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마을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송씨가 한 계절 땀을 흘리며 돌을 쪼아내고 실어내며 뭉개던 논에 다시 트럭으로 열심히 돌을 실어 날라 쏟아 놓고 있었다. 마을에서 헛 공사를 한 것은 송 씨 뿐이었다. 송 씨는 자신으로 하여금 헛 발질을 하게 만든 금희에게 따져 묻지는 않았다. 금희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자신을 기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송씨는 길 옆의 한 무더기의 구절초를 뜯어 코앞에 대고 그 향기를 힘껏 들여 마셨다.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듯한 송씨가 금희의 요구에 의해 한 계절을 열심히 죽 쑤는 것이 마을사람들에게는 별일로 화자 되었었다. 송씨가 자갈논을 파헤치며 용을 쓰는 것을 안쓰러워하던 경희는 송씨를 피해 주었었다. 그러나 고된 일을 한 후에 송씨는 더욱 가파르게 경희를 찾았다. 돌무더기의 논을 파헤치며 온통 수분을 탈진한 송씨는 밤이 되면 낮 동안 소진시킨 습기를 빨아들이듯이 경희에게 밀착해서 미친 듯이 갈망했다.
경희는 땀이 밴 송씨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 남자와 금희와의 모종의 거래가 무엇 이었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서너달이 지나도록 송씨의 표정과 입성은 변함이 없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을 드나들던 트럭의 모습이 뜸해지면서 이번에는 마을에 불도저가 들이 닥쳤다. 그놈은 낡은 기관에서 매연을 맹렬하게 뿜으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갈밭과 둔덕을 짓뭉개고 있었다. 자리를 잘못 잡은 배롱나무는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가 찢겼다. 작은 배롱나무는 꽃잎은 떨구지 않았다. 송씨는 돌무더기 위에 버려져있는 배롱나무가지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곳에 심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스러진 배롱나무 토막을 다잡아 움켜쥐었다. 휴식을 끝내고 불도저를 향해 다가오면서 송씨를 향해 운전수가 힌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백일홍을 피해 땅을 고를 낀대...“
“배롱나무가 말을 할 수 있나요.”
순간 운전수는 송씨가 분노 하는 것으로 착각해 흠칫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송씨가 이를 보이며 히죽 웃었다. 요란한소리를 내며 불도저는 발동이 걸린 후 캐터필러가 움직였다. 엔진의 굉음 속에서 운전사는 혼자 중얼거렸다.“별 시러배 아들 같은 놈을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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