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사람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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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12,985회 작성일 21-02-21 01:51본문
-아랫마을 사람들-
-36-
농민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마을 어귀에서 행진하며 난리굿을 펼쳤다.
그들은 프래카드와 만장을 만들어 경운기에 부착하고 탈탈거리며 시위했다. 젊은 날에,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곳에서는 항상 최병무가 참석해서 앞줄을 지켰다. 대체로 상여가 나갈 때였다. 만장의 깃발아래에 서면 그는 항상 마음이 설렜다.
그 울렁거림은 최병무와 친해 있었다. 최병무도 시위에 나서고 싶었지만 이해 당사자였다.
최병무는 오래간만에 깃발 든 농민들의 행진을 낮선 시각으로 멀리서서 바라봤다. 그리고 시위는 소득도 없이 끝날 것을 예감했다.
기업경영에 필요한 설득과 회유는 시위에 적절하게 쓰여 졌으나 만장을 사용한 집회는 실패를 잉태하고 있었다.
만장은 돌아오지 않는 길에 활용되는 상징이었으며 이끄는 세력보다 이끌리는 세력 내에 존재하는 슬픔이었다.
생을 마감하고 돌아가는 이를 안내하는 길에 사용하는 만장은 이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었다.
만장은 시위에 앞장서지 말아야했다. 행진에 필요하다고 만장을 앞세운 것은 만장을 능욕하는 일이었다.
이행하기 어렵고 허황되게 꾸며진 솔깃한 약속을 문서로 작성해놓고 시위는 사그라졌다.
약속을 문서화 해 놓고 악수하기 위해 하얀 손을 내민 것은 젊은 대표이사였다. 곤혹한 국면에 나서서 악수를 하게 만든 이사에게 눈을 흘기면서 젊은 사장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매수과정을 주도했던 이사는 다음 회기에는 짤릴 지도 몰랐다.
영악하고 고집 센 여자를 상대로 난처한 국면을 헤지며 궂은 일을 수행한 이사는 주주와 오너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게 분에 넘치는 노력으로 봉사했다.
실업자가 된다면 이사는 회사를 향해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닐 것 이었다.
젊은 사장의 목에 걸린 화려한 넥타이는 너무 세게 조여져 감겨있어 보였다. 금이는 넥타이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넥타이를 풀어 갖고 싶은 욕망에 잠간 휩싸였다.
그 욕망은 찻잔 위를 타고 올라온 불루마운틴의 커피향이 콧등을 스치고 지나가듯 잠간 그녀의 후각에 가볍게 머물고 지나가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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