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의 추억의 진영역 박물관이 되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3,248회 작성일 22-02-15 07:10본문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주변을 산책한다. 낡은 기찻길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새마을호 객차를 리모델링한 카페에선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쩌면 그보다 오래 마을의 사랑방이 되어 주었던 대합실은 기차역을 활용한 우리나라 유일의 철도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해에 자리한 옛 진영역 이야기다.
진영역의 역사는 일본이 놓은 군용철도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역장이 배치됐는데, 이들 중 하나가 지금도 유명한 진영 단감을 처음 재배했다고 전한다. 무려 11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영역은 경전선 복선전철화로 지난 2010년 폐역의 운명을 맞았다.
진영은 물론 김해 사람들의 오랜 추억이 쌓인 기차역은 진영역철도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부엔 한국철도의 역사와 함께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철도 관련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서 기찻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김해 최초이자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공장이었던 경남산업공사를 기억하는 성냥전시관도 만날 수 있다.
옛 진영역진영역은 1907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앞선 1905년 5월부터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일본이 군수품을 나르기 위한 군용철도로 마산항과 경부선의 삼랑진을 잇는 마산선을 건설한 것. 경인선, 경부선에 이은 세 번째 개통 철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지선철도였다.
이 노선은 원래 조선의 사업가 박기종이 철도부설 허가를 받은 상태였으나, 일제가 자금을 미끼로 사업권을 빼앗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군용철도를 놓았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진영역에는 일본인 역장이 배치됐다. 지금의 역사는 1943년에 세워졌는데, 목조로 된 기와 단층 건물에 당시 14명의 역무원이 근무했다고 전한다.
매년 단감축제가 열릴 만큼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은 진영 단감도 진영역과 인연이 깊다. 1923년 진영역장으로 부임한 일본인 하세가와가 조선인 여성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본국 식물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진영읍 일대에 단감나무 100주를 시험적으로 재배한 것. 기후와 산세, 토질이 단감 재배의 최적지였던 진영은 금세 달고 맛있는 단감을 생산해 열차로 중국 베이징까지 수출했다.
철도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기차역무려 11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영역은 경전선 복선전철화로 지난 2010년 폐역의 운명을 맞았다. 진영은 물론 김해 사람들의 오랜 추억이 쌓인 기차역은 2019년 진영역철도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경기도 의왕에 철도박물관이 있긴 하지만 옛 기차역을 활용한 철도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열차시간표와 잘 익은 주홍빛 단감을 나눠 먹는 어머니와 아들, 개표가위를 든 역무원 등 정겨운 대합실 풍경이 맞아준다. 모두 관람객들을 위한 포토존으로 쓰인다.
왼쪽 관람로에는 진영역이 속한 마산선의 역사와 함께 추억의 증기기관차, 소박한 간이역 전경을 담은 사진들이 이어진다. 대한제국 시절 순종황제의 기차 순행과 분단되기 전 하얼빈과 목단강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까지 연결됐던 기찻길, 1・4후퇴 당시 서울역을 떠나는 피난열차 등 한국철도사의 주요 장면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돼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옛 진영역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한 디오라마와 실제 무궁화호에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기관사 체험은 아이들에게 큰 인기다.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철도 관련 전시물도 눈길을 끈다.
추억의 에드몬슨식 승차권과 개표가위,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 승차권, 철도경찰 유니폼과 월급봉투 등은 하나하나 누군가의 삶이 깃든 것들이라 더욱 친근하다. 진영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진영 단감 이야기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추억, 성냥전시관진영역철도박물관에서 기찻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또 하나의 추억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성냥전시관이다. 유럽에서 1830년대부터 상용화된 성냥은 우리나라에 개항 전후, 실학자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1886년 인천 제물포에 성냥공장이 세워지고 이후 군산과 수원, 마산, 부산 등에서도 성냥을 생산하면서 가정용으로 보급됐다. 불을 피우는 성냥은 금세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고, 1950~70년대는 성냥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많은 성냥들이 제조되었다.
1948년 진영읍에 들어선 김해 1호 성냥공장이었던 경남산업공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린표’성냥을 만들던 곳이다. 한때 3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릴 만큼 번성해 주민 대다수가 이 공장 덕분에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보급되면서 성냥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지난 2017년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공장으로 남았던 경남산업공사는 결국 가동을 멈췄다. 이곳 전시관에는 당시 성냥공장에서 사용하던 기계와 관련 물품, 실물현판 등을 모아뒀다.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기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성냥 한 개비의 따스함이 향수처럼 밀려든다.성냥전시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옛 새마을호를 리모델링한 카페가 자리해 걸음을 쉬어가기 좋다. 지역청년들이 운영하는 이곳은 여유롭게 책도 읽고 간단한 목공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김해지역에서 채취한 벌꿀을 활용한 허니와플과 벌집아이스크림 등 이색 메뉴도 선보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