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품으로 돌아온 바보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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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7,488회 작성일 18-05-30 21:21본문
- 노 전 대통령이 손녀 태웠던 자전거
- 관람객 만날 때 자주 썼던 밀짚모자
- 사랑채·주방·안채·서재·비서실 등
- 생전 소박했던 일상 엿볼 수 있어
- 생태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이 설계
- 흙·나무 등 자연 재료 사용해 시공
- 주변 산세와 이어지는 평평한 지붕 등
- 누구나 볼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지어
다시 5월, 그리고 봉하다. 어느덧 9년.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한국 현대사에 또 하나 비극의 역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노랑 물결이 일렁인다. 이달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개방되면서 다시 한번 구름 인파가 봉하마을로 몰려들고 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촌부 노무현’, 자전거 뒤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리던 ‘할아버지 노무현’, 희열과 감동을 선사했던 불꽃 같은 정치인 ‘대통령 노무현’이 있는 대통령의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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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전경. 초가 지붕의 생가 뒤 건물이 이달부터 개방된 사저 ‘노무현 대통령의 집’이다. 오른쪽으로 노 전 대통령 묘역이 보인다. |
■사람 사는 세상의 ‘지붕 낮은 집’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일한 전직 국가원수다. 퇴임하던 날 KTX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지극히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온 그의 사저가 지난 1일 일반에 전면 개방됐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8년 ‘초호화 아방궁’이라고 부르짖던 그곳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 소탈과 평범의 상징답게 사저라는 표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서거하기 전까지 1년3개월 정도 생활했던 집으로 들어갔다. 시민에게 집을 개방하고 내어준 권양숙 여사는 인근의 새로운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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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낮은 집’으로 불리는 고 노무현 전 대 통령의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지하 1층 차고. 노 전 대통령이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렸던 자전거와 빨간 수레가 눈길을 끈다. 계단을 올라 1층으로 향하니 표지석이 있는 산딸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이 집의 첫 외부 방문객인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기증한 나무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제주 4·3에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사저 내부로 향했다. 생태건축가인 고 정기용 선생이 흙과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해 설계했고, 주변 산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린다. 지붕에 기왓장을 올리지 않고 평면으로 평평하게 했다.
‘사람 사는 세상’ 액자가 걸린 사랑채 벽면 아래에는 노 전 대통령의 손자가 ‘휘갈긴’ 낙서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마저도 그림이라며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손님 접견 장소인 사랑채와 식사 장소인 주방, 그리고 안채로 향했다. 특이하게도 내부로 연결되지 않고 신발을 신고 나와서 건너가야 하는 구조다. 대통령 내외가 잠시라도 바깥에서 걸을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누구나 사저 곳곳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이 이 집의 설계에 반영됐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방문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민 품으로 돌아간 ‘대통령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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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서재. 장서 옆으로 그가 생전에 쓰던 밀짚모자가 보인다. |
사저 뒤뜰마저 소박 그 자체다. 산비탈에 꽃을 심어 ‘꽃 계단’을 만들었는데, ‘5월의 꽃, 신부의 꽃’ 작약이 만개했다. 이어 1000권의 장서가 있는 서재다. 사저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적 앞에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쓰던 밀짚모자가 보인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라고 외치실 때 대통령께서는 저 모자를 눌러 쓰시고 인사하러 나가셨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방문객들이 숙연해졌다.
퇴임 이후 서거 전까지 봉하마을의 최고 관광자원이자 ‘볼거리’는 단연 노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말 그대로 하루 열두 번(최대 열세 번)도 마다치 않고 시민에게 직접 인사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담장에서 시민들에게 허리를 굽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할머니, 제가 진짜 노무현 맞다니깐요”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파안대소하던 10년 전 인간 노무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서재 옆 비서실과 경호원 대기실까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이게 전부였다. ‘예산 1000억 원이 들어간 아방궁’이라고 했던 이곳의 실제 사저 공사비는 3.3㎡당 15만 원이던 구입 당시 땅값과 공사비를 합쳐 12억 원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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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추모의집 앞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노무현재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을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조화를 꿈꾸다’로 설명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만든 ‘지붕 낮은 집’은 이제 온전히 시민 품으로 돌아와 사람과 사람 사이 조화의 장이 되고 있다. 사저 맞은편 뱀이 길게 누운 형상의 ‘뱀산’과 산의 중턱에서 노 전 대통령이 사법시험 공부를 했던 ‘마옥당(구슬을 가는 집)’이 방문객들을 배웅했다. ‘지방의 지방’ 출신이자 빈농의 아들이었던, ‘학번’도 없었던 상고 출신. 재야 인권변호사로 영원한 비주류이자 바보였던 그가 그리워지는 5월, 노 전 대통령의 집을 나서면서 고인의 영면을 다시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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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생가 앞에 활짝 핀 ‘5월의 꽃’작약. |
10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주목받았던 김해 봉하마을. 그사이 봉하마을도 크게 달라졌는데, 슬픔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봉하마을과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대통령 묘역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왼쪽으로는 잔디밭과 산책로가, 오른쪽 아래로는 생태문화공원(사람 사는 들녘)이 있다. 잔디밭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추도식 때 추모객이 모인 곳으로,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이후 서거일에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인산인해를 이뤘다. 끝에는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를 경유지로 잔디밭을 한 바퀴 돌면 웬만한 공원도 부럽지 않다.
2015년 조성된 생태문화공원은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다. 친환경 손 모내기 체험, 가족 텃밭 분양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초입의 대통령 생가와 추모의집도 방문해야 할 코스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랑 글씨 아래 무릎을 굽히고 소탈하게 웃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은 봉하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념 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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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집 앞 노 전 대통령의 63년 인생사를 담은 전시물. |
‘대통령의 길’로 이름 붙은 봉화산 숲길과 화포천 습지길도 인기다. 노 전 대통령이 방문객과 함께 늘 거닐었던 봉화산 숲길은 두 가지 코스로 나뉜다. 5.3㎞로 2시간30분이 소요되는 전체 코스와 2.0㎞로 1시간30분이 소요되는 단축 코스인데, 어떤 코스를 택하든 봉화산 사자바위와 정토원 그리고 호미든관음상 등은 만날 수 있다.
화포천 습지길은 국내 최대 하천형 배후습지로, 꽃창포와 선버들 같은 습지수생식물의 보고다. 노 전 대통령은 귀향 이후 가장 먼저 화포천을 청소하면서 습지 복원에 앞장섰다. 습지길은 5.7㎞ 전체가 평지로 1시간30분이 걸리는데, 곳곳이 사진 촬영 포인트다.
■ 대통령의 집 관람 방법
- 인터넷홈페이지 예약 통해 주중·주말 5·6회 관람 가능
- 현장선 선착순 10명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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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읍 ‘바다의 별’ 유치원생들이 대통령 묘역에서 허리를 한껏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
‘노무현 대통령의 집’ 관람은 주중 하루 다섯 차례, 주말은 여섯 차례 가능하다. 매주 월, 화요일과 서거일인 5월 23일, 설과 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한 번에 25명이 방문할 수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과 별도로 개설된 ‘노무현대통령의 집(http://presidenthouse.knowhow.or.kr)’을 통해 온라인 예약을 받는다. 그 외 현장에서는 회당 10명 선착순 접수가 가능하다. 관람하려는 시민이 많아 다음 달 중순까지 단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인터넷 예약이 끝난 상태다. 현장에서도 오전 9시부터 줄을 서야 입장권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다.
관람은 무료로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약 40분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화(055-344-1309)로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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