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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사충신은…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제1회 사충신 및 의병 추모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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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6,168회 작성일 21-06-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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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김해성 전투가 우국애향 차원임에도 불구하고 430여년이나 무관심 속에 묻혀 있는 만큼 지역주민들이 그 의미를 찾고 재조명하기 위한 1회 사충신 및 의병 추모제가 열렸다.

 

지난 1일 김해 송담서원 광장에서 진행된 이날 추모제는 김해성 전투시 사충신과 순국의병의 활동이 가치와 위상에 비해 크게 인정받지 못하여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중 음력 421일을 추모제로 정해 선열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주최, 송담서원사충단표충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철저한 방역속에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례, 살풀이지전무바라춤 등의 의식행사, 흥덕사 덕일스님의 영반의식 순으로 진행됐다.

 

김해의 사충신은 송빈, 류식, 김득기, 이대형이다.

 

송빈은 진영읍 하계리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중군도총의 임무를 맡아 남문을 지켰으며, 왜군을 죽도까지 추격하는 전공을 올리기도 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왜군들이 물밀듯이 몰려오자 끝까지 저항하다가 성이 와해되자 큰 바위에 올라 임금이 계신 한양을 향해 절한 뒤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했다.

 

류식은 대동면 예안리에서 태어나 월당진으로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노비를 데리고 김해 읍성에 들어갔다. 왜적이 성으로 들어오는 호계천 물길을 막아 성안의 사람들이 괴로워하자 객사 앞의 땅을 파서 솟은 우물로 성 안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했다.

 

김득기는 지금의 외동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김해 읍성으로 들어가 동문 해동문의 수비를 맡고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대형은 삼방동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김해부사 서예원이 김해성으로 들어오라고 청하자 장정 백여 명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공진문을 지키며 밤낮으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들 사충신을 기리기 위해 1871(고종 8) 고종의 명으로 사충단이 건립됐다. 사충단의 원래 위치는 동상동 873번지였으나 1977년 김해시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277-6번지로 이전했다가 1995420일 사충신의 제향일을 기해 현재의 동상동 분산 중턱에 송담서원을 준공하고 그 안에 복원했다.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되었던 사충단의 제례는 1946년 후손과 지방민이 표충회를 조직하고 매년 음력 420일 사충신에 대한 제향을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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