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상록수’ 강성갑 선생, 추모 기념관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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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3,985회 작성일 22-09-21 08:02본문
광복을 즈음해 낙후된 농촌지역 교육사업을 일으키는데 헌신, ‘영원한 상록수’로 불리는 강성갑 선생을 추모하는 기념관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강 선생 기념사업회의 심용주 회장은 20일 “진영지역을 중심으로 한 교육사업에 헌신해오신 선각자이신 강 선생을 추모하는 기념관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그동안 경남도의회 방문에 이어 최근 홍태용 김해시장을 만나 기념관 설립문제를 의논했다. 사업회 측은 2층 규모 660㎡(200평)로 지으면 5억~2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선생의 유품을 보관중인 기념사업회는 기념관을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회 측은 곧 박종훈 경남교육감도 만나 협의할 예정이다.
정준호 김해시의원도 최근 임시회에서 5분 발언을 통해 김해시에 기념관 설립을 요청했다. 정 의원은 “선생은 농촌계몽운동 일환으로 가난한 농촌지역이었던 우리 지역에 교육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헌신했다”며 “선생의 고귀한 뜻과 겨레 사랑 정신을 길이 전하기 위해 기념관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생은 1946년 8월 15일 초등학교 밖에 없었던 진영에 복음중등공민학교를, 1948년 한얼중학교를 각각 개교했다. 이와함께 김해 진례면에 한얼중 진례분교를, 부산시 녹산에도 한얼중 녹산분교를 각각 설립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와 일본 도시샤 대학을 졸업한 선생은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서 ‘우리말본’ 강의를 듣고 농촌부흥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윤동주 시인과는 도시샤 대학 동문으로, 친교를 맺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38세의 나이로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낙동강변에서 총살당했다. 나중에 무고임이 밝혀져 관련자가 처벌받았다. 선생의 동상은 한얼중학교 교정(현 진영고 교정)에 있으며, 동상 아래에 유해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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