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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의 딸은 깊은 슬픔을 감추며 담담하게 말했다. 주일이던 지난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교회 당회장실에서였다. 

강성갑 목사(1912~1950)


“어머니는 6·25전쟁 당시 아버지를 회색분자로 몰아 죽인 지서장과 공모자들을 용서하셨어요. 사건 직후 법원이 지서장에게 사형을, 6명의 공모자에게 징역 각 10년씩을 선고했었지요. 법원이 그들에게 우리 어린 6남매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어머니는 이 또한 거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셨지요.”

1950년 8월2일 밤 강성갑(1912~1950) 목사는 진영읍내에서 10㎞ 떨어진 낙동강 수산교 인근 백사장에서 살해됐다. 그 후 꼬마숙녀였던 강 목사의 셋째딸 강혜선(76)은 모진 삶을 살아야 했다. 하나님을 붙잡고 산 세월이었다. 

김해 진영여중 교정 강성갑 목사 흉상.


원수를 용서한 강 목사의 아내 오중은(1914~91)씨는 독립유공자 오형선(1875~1944) 장로의 큰딸이다. 오형선은 거창교회 등 경남 서부 10여개 교회를 일군 사역자였다. 그의 형은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주남선 한상동 방계성 조수옥 등과 평양 감옥에서 옥살이를 한 오윤선(1871~1950?) 장로다. 

기독교 농촌교육 이끌던 선각자 
강 목사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문과와 일본 도시샤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신학생시절 덴마크 농민교육자 니콜라이 그룬트비의 신학과 사상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 농촌교육을 이끌고자 했다. 강 목사는 신학공부 후 부산 초량교회에 부임했고 이어 해방을 맞았다.

1946년 진영교회가 강 목사의 명성을 듣고 청빙위원회를 구성해 모셨다. 강 목사는 위원들에게 “그곳에서 농촌운동을 해도 좋습니까”라고 물었다. 부임한 그해 8월 강 목사는 복음중등공민학교(경남 김해 한얼중 전신)를 설립하고 기독교 농촌·교육운동을 전개했다. 곡물검사소 창고를 이용한 가교사에서 가마니를 깔고 수업했다고 한다. 이어 공민학교를 정식학교인 한얼중학(중고과정)으로 전환해 설립인가를 받았다. 

김해 진영여중 교정 강성갑 목사 흉상. 왼쪽부터 강 목사의 처남 오영은씨, 진영교회 박규남 목사 부부, 강 목사의 딸 강혜선씨.


그의 교육목표는 애토(愛土) 애린(愛隣) 애천(愛天)이었다. 조국과 이웃, 그리고 하나님.

“한 가지 이상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얻어 조국에 이바지하며 인류문화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 이것이 곧 기독교교육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를 위해 성서와 국민신앙이라는 과목을 두었다. 학교 운영을 위해 진영교회가 적극 도왔다.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던 낙동강 수산교 현장. 강성갑 목사도 이 자리에서 사살됐다.


교사 신축은 쉽지 않았다. 재정과 자재가 부족했다. 
“강 목사님이 창안한 만주방식 흙벽돌 제조공법으로 교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에 학부형들이 자진해서 학교로 모여들어 협력했죠.” 제자들의 증언이다. 

강 목사는 자립과 자조를 강조하며 노작교육을 실시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는 성서정신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훗날 이 노작교육이 극우집단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올가미의 빌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재 한얼중학교는 진영읍 구도심을 떠나 신택지로 이전했다. 옛 한얼중 자리에는 진영여중이 들어섰다. 또 옛 한얼중 녹산분교는 녹산중학교(부산 강서구)가 됐고, 진례분교(김해)는 옛터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세월이 지났다. 

1954년 제막식을 가진 강 목사 흉상은 현재 진영여중 교정에 서 있다. 유일한 유적인 셈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얼중은 공립학교로 바뀌었다. 녹산분교도 녹산중이라는 공립학교로 변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강 목사와 한얼중은 한때 서울 이남 기독교교육의 대표적인 학교였다. 6․25전쟁 무렵 한얼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의 증언이다. “강 목사님은 학생들과 흙을 빚어 담을 쌓고, 그 담이 네 번이나 무너져도 다시 세우셨어요. 농가를 지도 방문할 때면 꼭 감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고 미래를 기대하자고 당부하시더군요. 학교에서 일하는 소사 미장이 토목공 이발사 등에게도 똑같이 선생님이라 부르셨어요. 월급도 같았죠.” 

강성갑 목사 흉상(오른쪽) 뒤로 그가 시무했던 진영교회 십자가 탑이 보인다.


김 교수는 지난 4월17일 강 목사의 처남 오영은(전 서울 이수중 교장), 딸 강영희․혜선씨 등 유가족을 자택으로 초청해 위로했다. 그는 “그리스도 정신으로 사신 강 목사님에게 큰 감명을 받았으며 아마 살아계셨으면 내가 그 학교에 취직을 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한얼중의 우수한 기독교교육시스템이 소문나면서 연희전문 총장 언더우드 2세, 강 목사의 스승 외솔 최현배 선생과 백낙준 박사 등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규호 전 문교부장관, 교계지도자 조향록(전 한얼중 교장) 목사 등도 강 목사에게 영향 받은 사람들이다. 강 목사의 순교를 기리는 흉상 제막식에는 함태영(전 한신대 학장) 부통령, 정치인 김영삼(훗날 대통령) 등 2000~3000여명이 참석했다. 강 목사의 죽음을 두고 김교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신 예수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강성갑 목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함태영 부통령(1954년 5월 14일)


예수 정의 외치다 동족에 살해돼 
‘시대의 타살’은 이렇게 진행됐다. 전쟁 발발 후 인민군의 공세로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국군은 요시찰 인물에 대한 예비검속을 명한다. 이에 따라 경남경찰국과 김해경찰서는 소위 보도연맹원 등 요시찰 인물을 검속하라고 각 지서에 전달한다. 진영지서 김모 서장과 지역 극우단체는 진영읍내 요시찰 인물 250~300명을 체포해 진영금융조합 창고와 한얼중 등에 분산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한얼학원 최갑시 이사장과 강 목사도 불순분자로 분류돼 감금됐다. 그리고 낙동강 수산교 아래서 사살됐다. 어린 중학생들을 낙동강전선에 투입하겠다는 징집명령을 강 목사가 거부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때 최갑시 이사장은 다리에 총탄을 맞고도 죽을힘을 다해 낙동강으로 뛰어 들어 목숨을 건졌다. 그가 살지 못했다면 의문사가 됐을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은 훗날 200여명이 희생당한 ‘김해지역 양민학살 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최갑시 전 이사장의 증언. “강 목사님은 순교에 앞서 기도할 시간을 달라 했어요. 그리고 ‘주여, 이 죄인들을 용서해 주옵시고 이 겨레를 가난과 재앙에서 건져 주옵소서. 한얼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 죄인 주의 뜻을 받들어 당신의 품에 육신과 혼을 맡깁니다.” 

한편 지서장 김모씨는 한얼중 여교사를 성폭행한 후 불순분자로 몰아 죽이고 시신을 산에 버린 자였다. 이를 강 목사가 파고들자 “강 목사는 학교에 붉은 글씨의 현수막을 걸고 노작교육과 공동체생활을 하는 공산주의자”라고 우겨 총살한 것이다. 붉은 글씨는 ‘말씀’을 쓴 것이다. 게다가 지서장과 극우 토호세력들은 정부물자를 빼돌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를 지적하는 강 목사는 눈엣가시였다.

이 사건은 미국 선교사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KRA) 등을 통해 미국언론에 보도되면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런 부모를 둔 강혜선과 여섯 형제는 한때 보육시설을 전전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폭염 속 강 목사의 선교벨트를 따라 이동했던 1박2일. 아버지의 행적을 더듬던 70대의 딸 강혜선씨. 그는 울지 않았다. 기도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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